< 작가노트 >

 

The epistle of the Others 

유리화를 통해 공간 내부에 들어 온 빛이 사물들에 부딪힌다. 그리고 반사된다. 사물에 남겨지는, 동시에 반사되는 이 빛은 사물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다.

(중략, 정리할 생각이 생길 때마다 찾았던, 지어진 지 40년 남짓 되는 연희동 성당, 2층으로 올라가는 반원형 내부계단 앞에 선 늦은 가을 어느 날, 이 시간대에는 처음 왔구나 싶었던 조금 늦은 오후. 계단을 오르려는데 저 위에 뭔가가 있는 것만 같다. 늘 오르던 계단 벽면의 색이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흰 벽이었는지, 연한 초록색이었는지, 어차피 불을 켜면 오렌지색이고, 낮에 불을 꺼두면 회색에 가깝겠지.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오를수록 벽에서 나에게로 향하는 색이, 불편하다. 나는 이러한 색을 본 적이 없다. 표현해 본 적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보이지 않았으니까. 내 주위를 감싸고 있던 익숙한 세계의 급작스런 변화로 생긴 낯섦. 그 것으로부터 오는 불편함이다. 몇 걸음 더 올라 계단의 중간지점 벽면 앞에 선 순간, 날 두근거리게 했던 이 색은 초월의 세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이 계절 이 시간의 햇빛이 건물 저 위의 유리화를 통과하며 만들어진 색임을 깨달았다. 보라색, 파란색, 분홍에 가까운, 아니 그 중간색. 불길이 타오르는 형상이랄까. 대체 어떤 재료를 태우면 저런 색이 나온단 말인가. 벽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색의 넓이는 눈에 가득 차도록 넓어지고, 나는 벽면 안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두렵다. 넓이도 깊이도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존재 앞에 선 두려움. 지금 이 공간에, 이 상황에 놓인 내가 느끼는 것은 단지 두려움일까. 아니면 구속하고 싶은 대상을 찾은 기쁨일까. 이 후 이러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나는 희열인지 고통인지도 모르는 감정을 다독이며 필름에 담았다. 촬영의 매 순간은 정신이 없었다. 계절에 따른 태양의 고도와 시간에 따른 태양의 일주, 그리고 구름의 많고 적음이 만들어내는 빛의 세밀한 변화가 지금 당장 내 눈 앞의 상황에선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결국 나는 이 색을, 너비를, 깊이를 완벽히 재현 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어떤 장치로도 불가능해 보였다. 해를 꺼버릴까. 모든 유리화의 색을 동일한 매체 위에 올려볼까. 아니, 이것은 지금 이 순간, 이 모습이기 때문에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마주한 대상의 주변부에서 오는 울림을 느낀다. 그것은 눈의 초점을 사물에 맞추어도 읽혀지지 않는 유리화를 관통한 빛의 뭉개짐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뭉개짐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레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야기다. 

행위로, 노래로, 언어로, 조각으로, 이미지로 무수히 반복되었고, 영원히 반복될 
사랑, 탄생, 약속, 시험, 분노, 벌, 찬양, 죽음, 안식, 희망에 대한 narrative 들이다.

유리화는 예술가가 창조한 하나의 작품이다. 그는 질감과 투명도와 색을 구분하여 유리를 선택하고, 원하는 크기와 모양으로 재단하여 그 위에 세부적인 묘사를 가한다. 작은 붓의 터치로 손의 주름을 그리기도 하고, 큰 붓으로는 하얀 깃털로 이루어진 날개를 그린다. 유리면을 문지르거나 긁어내 빛의 투과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그렇게 잘려진 유리들 사이에 마지막으로 납 선이 지나가고, 이제 이야기는 프레임 안에 갇힌다.

 색 면과 선, 디테일로 구축된 이야기가 갇힌 프레임. 유리화를, 빛이 비추고 있다. 반사되고 흡수된 후 남은, 선택된 빛의 관통이 공간에 남겨놓은 것은 유리화에 존재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유리화로 재현되었던 이미지의 형태가, 이 지점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이미지에 들러붙어있던 본연의 의미들도 사라진다. 마치 암호화 되듯 하나의 방식으로 해체된다.

그 빛을 받아 사물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의 통곡이었는지, 적에게 쏟아질 파멸의 노래였는지, 더 이상의 홍수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의 목소리였는지.

확인 가능한 것은 오직 빛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곳에 남겨진 흔적뿐이다.
의자를 끌다 생긴 마루의 긴 상처, 제의에 사용되었을 초의 촛농이 떨어져 말라붙은 자국, 마리아상에 내려앉은 먼지들, 갈라진 시멘트, 수만 번 여닫힌 문, 손닿지 않을 곳의 거미줄. 
이 위에 내려앉은 빛으로 다시 사물들이 담아 보내는 message. 
그 message가 나를 관통한다.

고백하건데, 나는 해독할 수 없다. 단지 내 눈에 와 닿기를, 내 몸에 와 닿기를 기다린다. 저 먼 곳으로부터의 빛과, 우리가 남긴 흔적이 만나는 표면의 안감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다고, 썼다가 살짝 뭉개버린,
흔적만 남은 편지를.

 
 
 
 
 

 

< 작가소개 >

소정수

2011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비주얼아트전공 수료
2005 연세대학교 생명과학과 졸업 

개인전
2012 The epistle of The Others, 갤러리 류가헌

그룹전 
2011 IN-COMPLETION전 갤러리 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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